김형수 논설실장

 

밤 산책은 여유롭다. 일과를 끝내고 저녁 동네 한 바퀴는 일상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로움마저 느끼게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생활 여적(餘滴)이다. 주변 공원을 거닐고 주인 인

 

적 없이 컹컹거리는 담장 너머 개 짖는 소리를 멀리 하며 돌아서는 골목길 모퉁이에 초여름 산들바람이 분다. 하지만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현대인들도 많다. 이른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허용되지 않는 직장 문화가 아직도 지배적이다.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40대 퇴사자 1170명을 대상으로 퇴사이유를 조사한 결과를 내놨다. 10명 중 2명 이상(23.2%)이 불안정한 고용 상태보다 잦은 야근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했다.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지도 1년 반이 돼간다. 주당 최대 근무시간을 16시간을 줄이고, 정규 근무시간이 끝나면 컴퓨터 전원까지 내리는 회사들이 즐비하지만 일거리를 부둥켜안고 퇴근해야 하는 직장 풍속도는 여전하다. 사실 정부가 근무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목적에 앞서 근무시간 억제에 치중된 결과가 초래됐다.
성하(盛夏)를 앞둔 6월은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다. 전국 각지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화재 야행이 시작됐다. 2016년부터 시작된 서울 '정동 야행'은 시간적 장점을 살려 해외 관광객의 발길이 머물고, 경주 월지(안압지) 야행도 큰 인기라고 한다. 부산야행은 피란수도를 떠올린다. 오색달빛 강릉야행, 부여 백제의 밤, 전주 완산야행, 여름 밤 군산을 걷다 등은 초창기 문화재 야행을 이끈 프로그램들이다.
그만큼 문화유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간보다 야간에 소비지출이 더 늘어나 지역경제에도 한 몫 한다는 시각이다.

야행 관광지로서 국내외 여행객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도 많다. 문화재에 대한 보호·관리 차원을 넘어 여가문화 확산에 따른 문화재 향유와 활용으로 정책의 방향도 바뀌고 있다.
지난 주말 '인천개항장 문화재 야행'이 문화지구 일원에서 개최됐다. 가수 정동하가 개막 축하공연에 나섰다. 다른 지역과 유사한 볼거리, 먹거리 등 체험행사도 펼쳐졌다. 그러나 개항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보전하고 있는 인천개항장 야행이 일회용 행사로 반짝해서는 곤란하다. 더욱이 정치인들의 얼굴 알리기 행사장이 된다면 문화 향기는 사라지고 만다. 문화재 야경, 밤에 걷는 거리, 역사 이야기, 야식, 야숙 등이 인천의 개항장 문화유산과 함께 상시 빛날 수 있도록 발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