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대한민국의 탄생은 기적이었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때 소멸의 위기에 직면했다가 미연합군과 한국 청년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았다. 1960년대 중반 산업화를 시작해 30여 년 만에 OECD에 가입했다. 역사의 제단에 자신을 바친 젊은이들의 숭고한 헌신과 시민의 저항으로 민주화를 성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눈부신 성장 뒷면에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2022년 기준 OECD 30개국 중 한국인 10만 명당 자살률이 1위이고, 특히 청소년 자살률과 노인 자살률은 1위이며, 노인 빈곤율 역시 매우 높다. 저출산율은 2023년 기준 압도적인 세계 1위이다. 압축성장의 부작용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으며, 국가 전체가 내리막길을 향해 가고 있다.

한국 사회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격투장이다. 사회적 지위나 재산이라는 기득권이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세습사회가 됐다. 능력과 노력만으로 가능했던, 자유로운 신분 이동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승자독식주의와 출세주의, 연고주의와 패거리주의 등의 부정적 요인으로 인해 한국인 특유의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양극화이다.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났다”라는 루소의 말은 희망이고, 민주주의의 당위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실제로 자유롭게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헌법에 보장된 형식적 평등과 현실에서의 실질적 평등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이 격차를 줄여나가야만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하면서 양극화 심화로 국민 통합에 실패했다.

정치 개혁과 인물 교체의 기회였던 4·10 총선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됐다. '정권심판'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더불어민주당 175석, 국민의힘 108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을 차지한 결과는 우리 정치의 명백한 후퇴를 보여준다. 오만하고 무능한 윤석열 정부를 향한 분노의 민심에 파묻혀 합리적이고 소신 있는 정책 경쟁은 실종됐고, 다당제의 실험은 유예됐다.

이는 구조적인 한계에서 비롯된다. 비례대표 비중이 작은 소선거구제에서 국회의원 대부분은 지역대표로 인식된다. 국회의원 한 사람이 국민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입법 의무를 지고 있다는 인식의 부족함 때문에 국가재정의 상태와 상관없이 지역구에 예산을 많이 끌어와야만 능력 있는 국회의원으로 인정받는 상황이다. 소선거구제가 유지되는 한 무조건 1당이 유리하고 거대 양당끼리만 경쟁할 수밖에 없다.

22대 국회가 출범하면, 선거구제 개편부터 논의해야 한다. 87년 체제 타협의 산물인 소선거구제를 없애고, 중·대선거구제와 위성정당의 꼼수를 허용한 준연동형비례대표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선거법의 전면적인 개정을 이루지 못한다면, 한국 정치는 양당 기득권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희망을 말하려면, 선거법을 과감하게 수술해야 한다.

▲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