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때 독서 시장을 흔들었던 작가 이문열도 잠시 기자를 했다. 장편소설 '황제를 위하여'에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기자를 혼내는 장면이 나온다. “너희(기자)들이 무슨 선거에라도 뽑혔느냐, 아니면 과거시험이라도 쳤느냐” “아닌데요” “그럼 도대체 너희들의 그 대단한 권세는 어디서 나왔느냐. 옛날 수호지를 쓴 사람은 도둑을 찬양했다 해서 오 대에 걸쳐 눈이 멀었다고 한다. 말과 글이란 그토록 다루기가 어려운 것이다”

▶종이신문이 미디어 시장을 석권하던 시절, 사회부 저녁 회의는 사뭇 살벌했다. 경쟁지에 물을 먹은 기자는 초죽음이었다. “오늘밤 당장 방카이(만회_挽回) 못하면 사표 써” 내일자 신문의 큼직한 꺼리를 물어오지 못한 기자들에는 “이 월급도둑놈들아” 불호령이 떨어졌다. 심약한 초년 기자가 회의 도중 실신했다는얘기도 전해왔다. 예나 지금이나 기자들은 하릴없이 바쁜 인생들이다. 큰 거 한방 터뜨렸다 해서 집안살림에 득이 되지도 않는다. 친구 녀석들이 개포동 아파트 분양받으려 새벽부터 줄을 서던 시절에, 기자들은 돈 안되는 곳에서 밤샘 하리코미(잠복)를 하곤 했다. 억강부약(抑强扶弱) 등의 어쭙잖은 사명감_공명심에 도취됐을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날에도 부리나케 출근하고, 처가집에서는 '내놓은 사위'였다.

▶지난주 이른바 '언론징벌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반대론이 엉머구리 들끓듯 시끄럽다. 반대론자들은 떠든다. 언론에 재갈을 물려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할 것이라고. 속 좁은 무리들의 근시안적 소견일 뿐이다. 행간까지 읽을 줄 아는 우리 국민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또 말한다. 과도한 징벌적 손해액 때문에 언론사와 기자들이 경제적 파탄에 이를 것이라고. 과장된 비관론일 뿐이다. 앞으로 취재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기자에게 “당신 거지가 될 수도 있어” 할 수도 있다. 소속 언론사가 엄청난 손해배상을 당하면 해당 기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도 있어서다. 그래서 처가 외가 등 3족이 거지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고관대작들을 거슬리게 할 기사들을 꼭 써야만 맛인가. 반대론자들은 또 말한다. 기자들이 밤에는 수사받고 낮에는 법정 불려다니느라 볼 일 다볼 것이라고. 보도자료만 쓰면 괜한 걱정이다. 지각없는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또 있다. 언론에 의해 치부가 드러난 사람들이 탈레반처럼 앞장 서 언론징벌법을 밀어붙인다고.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결여된 억지주장일 뿐이다. 언론에 의해 '흑석 선생' 아호까지 얻은 사람이면 어떻게 분한 심정이 들지 않겠는가. 반대론자들은 또 말한다. 언론의 자기검열이 강화돼 보도자료만 베끼게 될 것이라고. 긍정적 효과까지 무시한 주장이다. 신문사 차장 부장을 변호사들이 맡게 돼 변호사 시장의 숨통이 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언론징벌법'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지지율이 높을수록 '환영'이라거나 못본채 한다는 것이다. 영리한 그들인지라 이미 속셈을 끝낸 것이다. '정권을 잡게되면 귀찮은 기자들의 태클 없이 권력을 누릴 수 있겠구나' 하고. 모든 것이 바뀌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기자들도 이제는 부강억약(扶强抑弱)의 새로운 정신으로 좀 평안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정기환 논설실장